엄마의 이야기
세월이 흘러 내 나이도 벌써 칠십하고 둘이 되었네요.
오십년전 이야기를 써보고 싶더라구요. 태어나기는 북한이 잘 보이는 강화도에서 태어나서 스무살까지 살았습니다.
서울에 와서 성수동이라는 변두리에 있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했어요. 흔하던 비단 공장에서.
문밖에 나가면 공순이라는 말을 들었죠. 참 속상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루 열한시간을 일하면서 겨우 월급이라고는 한달 일해야 이천 백원이었죠.
(친구가 하는 말 "우린 한달 일하고 천오백원 받았어")
하루 고작 칠십원 꼴. 참 힘들고 슬펐습니다.
일주일 주야간을 하는 2교대, 지금 생각해보면 가슴 아픈 세월.
우리들은 사촌들과 같이 모여서 기숙사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결혼을 일찍 했으니깐요. 스물 셋, 넷이면 다 결혼을 한다고 회사를 그만두더라구요.
나는 스물 일곱살에 지금 남편을 만나 같이 살게 되었지요.
남편은 그때 나이 서른 한살 노총각이었죠.
겨우 방 하나 부엌 하나 백오십만원짜리 말이죠. 영등포에 있는 작은 초가집에 살았어요.
남편은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피곤해서 지쳤고, 잠을 자고,
하루 일과는 반복이었죠.
참 답답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난 계획도 없이 살았어요.
친정 어머니가 오시면 "너는 산아제한도 할 줄 모르니"
딸 넷을 낳고, 그 다음 아들을 낳았고, 여섯번째 또 딸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육남매를 낳았습니다.
동창들이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아아, 지금도 육남매가 있어?" 하고 말이죠.
지금은 어영부영 세월이 흘러 딸들이 셋이나 결혼을 해서 나갔습니다.
직장 때문에 집 나간 애도 있고, 지금 남은 애들은 아들하고 딸하나 뿐입니다.
재미있기도 합니다.
기를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을때도 많습니다.
어떨 때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답니다.
육십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한 반에 보통 칠십명씩 앉아서 공부를 했고,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한 반에 오십명쯤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집은 아버지가 물려받은 땅이 얼마 안되어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겨울은 해가 짧다는 핑계로 점심은 자주 굶었고,
두꺼운 옹기 그릇에 밥을 담아 주셨습니다.
쌀을 절약하기 위해 겨울에는 김치밥을 자주해주시더라구요.
배가 고팠고, 밥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언제 새하얀 쌀밥을 먹어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늘상 고구마를 쪄서 점심으로 먹었고, 그래서 그때 질려서 지금도 고구마는 잘 먹지 않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때에는 큰아버지 집에 가면 큰 대문에 월남 파월 용사의 집이라고 딱지를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보다 열 살 위인 큰오빠들이 베트남에 전쟁중이라 민주국가를 도와준답시고 맹호부대, 백마부대로 줄줄이 친척 오빠들이 가셨습니다.
엄마들은 모이시면 오빠들 걱정, 걱정. 언제나 무사히 돌아오실까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육십년 대에 초등학교를 다닐때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색깔이 노란 양은 도시락에
보리를 섞은 밥을 도시락에 싸주셨는데, 언니와 나는 반반씩 먹었습니다.
도시락 1개를 싸주시면 내가 먼저 먹고,
반은 남겨서 옆에 있는 교실로 가져가서 언니한테 가져다 주면 나머지는 언니가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랫집 친구도 고모와 함께 도시락 1개를 나누어 먹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쌀이 흔하고 넘치는 시대라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집은 시골이라 대문을 열고 앉아 있으면 곡창 지대라 넓고 아름답습니다.
북한도 잘 보이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은 너무도 아름답고 보기도 아주 좋더라구요.
봄에는 사람들이 나와서 모내기를 하고 떠들어 대며 점심을 먹고
시골 사시는 분들은 사철 바쁘게 사십니다.
여름에는 벼들이 파란 옷을 입고,
저마다 풍년을 약속이나 한 듯 잘 자라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방 추석이 가까워지면 벼들은 고개를 숙이며 누렇게 황금색 옷을 입고,
벼 이삭은 초롱초롱한 알맹이로 우리를 바라보고 반기는것 같습니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대한민국 땅에서 사는 내가 지금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절마다 바뀌는 풍경이 어찌나 예쁜지
저녁때가 되면 저녁 노을이 온마을을 비추어 질때는 따뜻하고 편안하고 아득한 곳에서 사는것 같습니다.
산은 산대로 울울창창 소나무가 잘 자라고 있고,
들에는 들대로 곡식들이 계절을 맞추어서 잘 자라고,
우리들의 생명을 살아가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땅에서 나고 자라고,
땅을 밟고 하늘을 지붕삼아 하루 하루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딸이 다섯이라 딸 부잣집이라고 부르지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딸 나면 비행기 타고, 아들 나면 달구지 탄다"고 한다는데
우리는 반대인거 같아요.
아들 때문에 비행기를 여러번 탔습니다.
남편은 힘든일만 많이 하셔선지 검게 탄 얼굴에 주름진 얼굴.
지금은 많이 늙으셨죠.
아들이 마음먹고 육개월 휴가를 내서 강원도에도 가보았고, 거제도 가보았습니다.
가도 가도 다 보아도 깨끗하게 잘 만들어 놓았더라구요.
수고하셨어요. 고맙습니다.
봄은 봄대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벚꽃, 진달래 개나리가 얼마나 예쁜지.
여름에는 아무리 덥다 덥다 해도 호박 덩굴은 담장 너머로 잘 자라고,
노란꽃도 예쁘게 피고, 열매를 맺으면 따서 호박전 부침개를 해먹고, 반찬도 되고.
주위에 자연이 고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네요.
어머니의 우스갯소리가 들리는것 같더라구요.
"평양 기생보다 더 예쁜 꽃이 호박 꽃이야"
돌아가신지도 많이 지났는데도, 어제 일 같이 어머니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